여자끼린데 뭐 어때. 오해원은 늘 그런 식으로 말했다. 뭐 어떠냐고, 무슨 문제 있냐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설윤아를 할 말 없게 만들었다. 무슨 문제 있냐고? 문제를 따지고 들자면 문젯거리는 차고 넘쳤다. 이를테면 아까처럼 상의 안으로 손 하나 집어넣고 옆구리를 만지작거린다거나, 라인이 진짜 예쁘다면서 허리선 따라 움직이던 손가락으로 골반 언저리를 슥 훑...
“즈하야 나 너 좋아해.” 카즈하의 예쁜 다리. 카즈하의 예쁜 발가락. 그 애가 늘 바르던 인디핑크 색 매니큐어. 광택감이 느껴지는 그 애의 발톱. 이름은 핑크지만 오히려 팥죽 색에 더 가까운 것 같은 발색. 나는 카즈하의 발등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충동적으로 얘기한다. 나 너 좋아해. 미친 여자 같겠지만 니가 좋아. 니 맨다리에 내 다리 겹치고서 키...
“있잖아 사실... 나 오메가야.” 유리는 사귀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동거녀인 예나의 폭탄발언(인지 뭔지 모를 개소리)를 듣고 입술을 감쳐 물었다. 오메가? 그게 뭐지? 낯선 단어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, 건강 챙긴다고 얼마 전 해외직구한 오메가쓰리가 퍼뜩 머릿속에 떠올랐다. 유리의 눈동자에 집오리마냥 입술 삐죽 내민 예나의 모습이 들어찼다. 장...
원영은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채원을 보았다. 언제쯤 눈꺼풀이 감겼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깨보니 새벽이었다. 채원은 제 옆에서 웅크린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. 새우가 친구 먹자 그러겠네. 뭐 저렇게 단단히 웅크리고 있지 싶었다. 그런 주제에 덮는 이불은 시원하게 내팽개쳐져 있었다. 원영은 팔을 뻗어 겉이 베이지색인 이불을 끌어당겼다. 양손으로 이불 끝단을 잡...
어느 날 경이로울 정도로 선명한 섬광이 지구 표면의 한 군데에서 보였고, 그 지점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. 대지가 뒤흔들리고 온 지구의 바닷물이 요동쳤다. 커다란 소행성과의 충돌의 여파였다. 뭍과 물이 뒤섞였고, 거대하고 그 크기만큼 무거운 파도에 의해 인류가 일궈낸 문명들은 죄다 휩쓸렸다.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소행성 격추 시나리오의 실패는 뼈아팠다...
당돌한 수다쟁이 꼬맹이 인어.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채원은 원영을 딱 그렇게 생각했다. 그렇다고 해서 원영이 진짜 꼬맹이인 건 아니지만, 키도 저보다 훌쩍 크긴 하지만, 나이도 분명 더 어릴 거고 하는 짓이 애 같기까지 하니까 꼬맹이 취급하는 게 문제는 안 될 거다. ㅡ제 소원이요? 언니 가지는 거요!! 아니다, 난 왕자님이랑 결혼해야되는데....... 알...
채원은 종종 생각했다. 왜 사는지를 모르겠다고. 매일매일이 지루하고 또 지루한 나날들이었다. 아침에 일어나면 하는 일 없이 마당을 거닐다가, 기르는 약초가 잘 자라고 있나 들여다보고, 그 후론 양탄자 위에 배 깔고 누워서 마도서나 뒤적거렸다. 딱히 즐거운 일들은 아니었다. 보랏빛 마법약을 달이고 금지된 환상의 마법을 익히는 일은 딱 5년전까지만 재미있었다....
ㅡ이번 시험 평균 90 넘기면 너 소원 하나 들어줄께. 그 말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. ㅡ원하는 게 뭐든, 전부 다. 채원은 선심 쓰듯이 덧붙였었다. 진지하게 고민하고 정말 다 들어줄 생각으로 말한건 아니었다. 상대는 '얘가 머리는 나쁘지 않은데 공부를 하나도 안 해요'의 주인공이자 인생 최고 스코어가 무려 74점인 원영이었다. 평균으로 따지면 80점만 넘...
유리는 그 때 예나를 처음 보았다고 했다. 말발굽 소리가 귀를 어지럽히고 까마귀 떼가 하늘에서 소란을 피워댈 때에, 죽는 게 무섭다기보다는 오로지 배를 쥐어짜는 지독한 허기를 느꼈을 때에, 유리는 목소리를 들었다. 그 목소리는 나무 위에서 우짖는 새의 소리 같기도 했고, 구김 없이 흘러가는 밤의 끝자락 같기도 했고,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동아줄 같기도 했다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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